
▲ View more DIASPORA STORIES ▲ Columnist Fiona Yan
최근 몇 년 사이, 뉴욕 조선족 사회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각자 먹고 살기에 바빠 서로를 돌아 볼 여유 조차 부족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금씩 모이고, 연결되고, 서로를 돕는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여러 행사와 모임을 지나 오면서 나는 이것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뉴욕 조선족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조선족들에게는 예전부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 공부를 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자식의 미래와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마음 하나로 머나먼 미국 땅까지 왔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제도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가족을 위해 참고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의 삶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돈을 벌어야 했고, 집세를 내야 했고, 먹고 살아야 했고, 중국에 있는 자식과 가족들도 챙겨야 했다. 하루하루가 바빴고, 정신없이 지나갔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단체를 만들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마음은 있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활에서 기본적인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여러 단체와 모임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마음 한편에는 의아한 생각도 있었다. “왜 저렇게 나서서 할까?”, “괜히 앞에 나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가 아직 공동체의 필요성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뉴욕 조선족 사회 안에는 봉사, 문화, 경제, 체육, 예술 등 여러 방면의 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생활 정보를 나누고, 누군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누군가는 문화행사를 만들고, 누군가는 체육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선족들이 이제 미국 땅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 단계인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적 소속감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뉴욕 조선족 사회 안에서 나타난 변화들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조선족동포회는 많은 동포들이 직접 참여한 투표를 통해 정성국 회장을 선출했고, 이는 조선족 사회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대표를 세워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중미커뮤니티센터는 지난 5년 동안 크고 작은 활동을 이어오며, 동포들의 미국 생활 정착과 커뮤니티 연결에 힘을 보태왔다. 또한 성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봉사센터의 모습도 눈에 띈다. 여기에 진달래예술단처럼 문화와 예술을 통해 여러 행사에서 조선족의 정서와 재능을 보여주는 단체들도 생겨나면서, 뉴욕 조선족 사회는 점점 더 다양한 색깔을 갖추어가고 있다.
미국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기회의 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롭고 막막한 순간이 많다. 친척도 별로 없고, 오래된 친구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때로는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 간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물어보고, 도울 일이 있으면 함께 움직인다. 이런 관계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생기고, 단체가 만들어지고, 공동체의 형태가 조금씩 뚜렷해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조선족 사회 안에서 사람들의 참여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중요한 모임이나 선거, 문화행사, 봉사활동, 체육대회 등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생계를 위해 조용히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우리도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의식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듯하다.
경제인들의 네트워크도 생기고, 축구·배구·골프·사격 같은 취미와 체육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예술단과 공연팀도, 여러 행사에서 무대를 빛내고 있으며, 글쓰기와 사회 진행, 행사 기획, 디자인,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단체 수가 늘어났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동안 각자의 삶 속에 숨어 있던 능력과 재능이 드디어 표현될 수 있는 무대가 생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무대가 없었을 뿐이었다. 많은 조선족들은 결코 아무런 배경 없이 미국에 온 사람들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나름의 사회적 지위와 직장, 그리고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다. 더 나은 생활과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미국 땅까지 온 것이다. 다만 이곳에 와서는 언어와 생계의 벽 앞에서 한동안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 척박한 뉴욕에서 꽃을 피운 조선족 삶의 강인함을 표현한 일러스트 (편집자)
그래서 지금, 비록 조금 늦었다고 느껴질지라도,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 누군가에게는 노래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봉사할 수 있는 자리, 누군가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을 이끌고 연결할 수 있는 책임이 주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단체가 많아지면 서로의 역할이 겹칠 수도 있고, 생각의 차이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보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커뮤니티를 위해 노력하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다.
뉴욕 조선족 사회는 이제 생존의 단계를 지나,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세워주고, 각자의 재능을 나누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모임의 증가가 아니라, 이민사회가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마음의 안정과 소속감,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더 넓은 길을 고민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기를 바란다. 서로 경쟁하기보다 서로 응원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이 미국 땅에서 더 따뜻하고 자랑스럽게 자리 잡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우리는 모두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길 위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잡고,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늦게 피는 꽃도 아름답다. 어쩌면 뉴욕 조선족 사회의 진짜 꽃은 이제야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 칼럼니스트 엄복실 (Fiona Yan)
— 뉴욕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