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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 너는 누구냐

byeoninc 2026. 7. 9. 01:46

 View more Li Shenglie

프롤로그: 질문으로 시작하는 민족

“너는 누구냐.”

이 물음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 민족은 행복한 민족이다. 한 땅에서 나고 자라 그 땅에 묻히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이란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공기 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에게 이 질문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다. 중국에서는 “너는 한국 사람이냐”는 물음을 받고, 한국에서는 “너는 중국 사람이냐”는 물음을 받는다. 미국에 오면 두 질문이 한꺼번에 날아온다. 그리고 정작 조선족 자신도 밤이 깊어지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답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조선족은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확정할 수 없는 존재, 확정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이민 — 백오십 년의 여정

조선족의 이민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성열 뉴욕 조선족 한의사

십구 세기 후반, 함경도와 평안도의 굶주린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넜다. 얼어붙은 강 위로 이고 진 봇짐 속에는 씨앗 몇 줌과 조상의 위패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만주의 황무지를 논으로 바꾸었다. 물이 없는 땅에 물길을 내고, 벼가 자랄 수 없다는 땅에 벼를 심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과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뒤를 이었다. 해방이 되었을 때 어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떤 이들은 이미 피와 땀이 스며든 만주 땅에 남았다. 남은 사람들이 오늘의 조선족이 되었다.

그러나 정착은 잠시였다.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자동북의 젊은이들은 대련으로, 청도로, 상해로, 북경으로, 광주로 떠났다. 1992년 한중수교가 열리자 이번에는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향했다. 조상들이 떠나온 땅으로 백 년 만에 되돌아가는, 역사상 유례가 드문 역이민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일본으로, 역동적이고 기회가 많은 미국으로, 유럽으로, 호주로, 생활비가 낮은 동남아로. 그러다가 다시 익숙한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칠백만 해외 한인 동포와 남북한 칠천오백만 겨레 가운데, 조선족만큼 삶의 터전을 이토록 여러 번 옮긴 부류는 없다. 조선족의 지도에는 종착역이 없다. “어디가 더 살기 좋은가”라는 질문은 조선족에게 한가한 여행 담론이 아니라 생존의 나침반이었다.

겹겹이 쌓인 정체성

조선족의 정체성은 한 겹이 아니다. 양파처럼 겹겹이 싸여 있어서, 한 겹을 벗기면 또 한 겹이 나온다.

법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십육 개 민족 가운데 하나인 소수민족이다. 혈통으로는 분명한 한민족이다. 언어로는 조선어와 한어를 함께 쓰는 이중언어자이며, 문화로는 김치와 만두를 한 상에 올리는 사람들이다. 중국에서는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살았고, 한국에 가면 “동포”라 불리면서도 어딘가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족이라는 또 하나의 소수가 되었고, 미국에 와서는 이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또다시 자기 자리를 찾는 중이다.

미국의 조선족만 들여다보아도 그 결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첫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법적으로 미국인이 된 사람들이다. 둘째는 중국 국적을 유지한 채 영주권이나 각종 비자 신분으로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셋째, 의외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국 국적 소유자들이다. 결혼이나 부모의 호적을 통해 대한민국에 귀화한 뒤 다시 태평양을 건너온 이들로, 법적으로는 분명한 대한민국 재외국민이다. 한 가족 안에 중국 여권과 한국 여권과 미국 여권이 나란히 놓여 있는 풍경 — 이것이 미국 조선족의 현실이다.

미국에 들어온 경로 또한 그들의 인생만큼이나 굽이굽이 다양하다. 일본에서 학문을 닦다가 더 넓은 연구의 무대를 찾아온 학자가 있는가 하면, 남미에서 몇 년 장사를 하다가 북상한 사람이 있고, 유럽을 거쳐 온 이, 캐나다 국경을 넘어온 이도 있다. 합법의 문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고, 목숨을 걸고 험한 길을 택한 사람도 있다. 그 길이 어떠했든,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는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식만은 나보다 낫게 살게 하겠다는 다짐이다.

같은 이름, 다른 얼굴

조선족은 한국인과도 다르고 중국인과도 다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같은 조선족이라도 어느 땅에 사느냐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중국의 젊은 조선족은 탄탄한 인맥의 기반 위에서 뛰어난 경제적 후각을 발휘한다. 연해 대도시의 무역과 정보기술 분야에서 그들은 한중 양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일본의 조선족은 유학파가 많아 학력이 높고, 일본 주류사회로의 침투율이 어느 조선족 사회보다 높다. 한국의 조선족은 가장 방대한 그룹으로, 근면하고 부지런하기로는 따를 자가 없다. 건설 현장에서, 식당에서, 병원 간병 현장에서 그들은 한국 사회가 굴러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조선족 — 이민 역사는 가장 짧지만, 식당과 네일숍과 마사지숍과 청소업 같은 작은 비즈니스를 발판 삼아 놀라운 속도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같은 씨앗이 다른 토양에서 다른 모양의 나무로 자라났다. 그러나 그 나무들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어떤 단체, 어떤 집단에 들어가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놀라운 속도로 자신을 주변 환경에 맞추어가는 적응력. 그리고 남들이 견디지 못하는 고생을 묵묵히 견뎌내는 인내와 끈기.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다민족국가의 소수민족으로 살아남으며 배운 생존의 기술이요, 백오십 년 이민사의 굽이굽이에서 몸에 새겨진 근육의 기억이다.

유대인과 닮았는가 — 닮았으나 다르다

떠도는 민족이라 하면 사람들은 곧잘 유대인을 떠올리고, 조선족을 “동양의 유대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닮은 것은 겉모습뿐이다.

유대인은 핍박에 의해 쫓겨 다녔다. 그들의 이동은 등 뒤에서 밀어내는 힘에 의한 것이었다. 반면 조선족의 이동은 — 첫 도강이 굶주림에 떠밀린 것이었음을 제외하면 — 대부분 앞에서 끌어당기는 힘에 의한 것이었다. 더 나은 삶, 더 넓은 기회, 속된 말로 하자면 돈을 찾아 스스로 길을 나선 것이다. 쫓겨난 자의 이동과 찾아 나선 자의 이동은 겉은 같아도 속은 다르다. 하나는 비극의 역사이고, 하나는 도전의 역사다.
또한 유대인에게는 민족을 하나로 묶는 유대교가 있고, 수천 년 지혜를 담은 탈무드가 있다. 조선족에게는 그런 종교도, 그런 경전도 없다. 있다면 오직 몸으로 익힌 생존의 문법 — 부지런함, 참을성, 눈치, 적응력 — 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조선족의 강점이자 동시에 아픈 곳이다. 경전이 없는 민족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두만강을 건넌 첫 세대의 이야기, 만주 벌판을 논으로 바꾼 개척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새 삶을 일구는 이야기 — 이것을 글로 남기는 일이야말로 조선족이 스스로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탈무드일 것이다.

떠도는 자의 힘, 그리고 그늘

경계에 선 자는 괴롭지만, 경계에 선 자만이 양쪽을 다 볼 수 있다.

조선족은 태어나면서부터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세계관 사이에서 자랐다. 그래서 조선족에게는 남다른 눈이 있다. 중국인의 눈으로 한국을 보고, 한국인의 눈으로 중국을 보고, 이제는 미국인의 눈으로 그 둘을 함께 본다. 하나의 창문만 가진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시야다. 세 개의 언어를 넘나들고, 세 개의 문화를 번역하고, 낯선 땅에 떨어져도 반년이면 그 땅의 문법을 익혀버리는 이 무서운 학습 능력 — 이것이 조선족이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비결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그늘도 보아야 한다. 조선족 사회에는 구심점이 약하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는 데는 능하지만, 하나로 뭉쳐 큰 목소리를 내는 데는 서투르다. 기록의 문화가 얕아서 앞 세대의 경험이 뒷세대에 전해지지 못하고 번번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민의 격랑 속에서 부모와 자식이 나라를 달리하여 살아가는 이산의 아픔도 있다. 조선어를 잃어가는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안타까움도 있다.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빠른 적응력의 뒷면에는 쉽게 뿌리를 뽑는 가벼움이 있고, 강한 개인의 뒷면에는 약한 공동체가 있다.

이 그늘을 직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늘을 아는 민족만이 볕으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에필로그: 뿌리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조선족 — 너는 누구냐.

중화민족이냐 한민족이냐,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 — 이런 양자택일의 질문 앞에서 조선족은 영원히 정답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잘못 던져진 질문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어느 쪽”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이며, 그 사이야말로 조선족의 고향이다.

흔히 조선족을 두고 뿌리 없이 떠도는 민족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조선족은 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땅에 묻는 대신 몸에 지니고 다니는 민족이다. 화분의 나무가 아니라 씨앗을 품은 새다. 어느 땅에 내려앉든 그 자리에 김치를 담그고, 명절상을 차리고, 아이에게 우리말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렇게 두만강 가에서, 만주 벌판에서, 서울의 골목에서, 도쿄의 거리에서, 그리고 지금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 조선족은 같은 씨앗으로 매번 새로운 꽃을 피워왔다.

정체성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이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로 답하는 것. 그렇다면 조선족의 답은 이미 백오십 년의 삶으로 쓰여 있다. 견디며 살아간다. 맞추며 살아간다. 도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조선족으로 살아간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조선족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아직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붓은, 내 손에 들려 있다.

— 재미동포 한의사 이성열